군 시절 에피소드 1(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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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회 사이트를 들어오면 난 늘 군 시절 뺑이 치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가끔씩이마나 옛 군생활을 회상하며 그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올려볼까 한다.
1986년 8월
37사단 훈련소에 머리 빡빡밀고 들어섰다.
배웅 온 친구들과의의 작별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훈련소로 들어섰다.
1중대 1소대
내가 배속받은 훈련소 소속이다.
훈련소 입소 후
이런 저런 교육을 받던 어느 날,
교육 교관이었던 내무반장이 교육 도중 나를 지명한다.
"너 이리 나와"
이유도 모른체 내무반장 앞에서고 이어
"나 따라와"
교육장 뒤로 돌아 간 내무반장 왈
"너 지금 게기냐?"
이건 무슨 귀신 씨나라 까먹는 소리.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도통 알수가 없다. 열심히 훈련 받았는데 왠 날벼락.
훈련태도가 불량했었던 것이 지...
내 인상이 불량했었던 것인 지...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게겼단다.
훈련소 퇴소식을 얼마 남기 지 않았을 즈음
내부반장이 저녁 점호에서 나를 지명하며 한마디 한다.
"최봉철"
"네. 훈병 최봉철"
"자네가 퇴소식때 머리 격파의 영광을 받았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퇴소식에 태권도 시범 및 격파를 한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차례대로 격파를 하고 격파를 하지 못한 훈병들만
벽돌을 들고 앞으로 나가 재 격파를 한다. 물론 각본에 짜여진 쇼이다.
누가 깨던 못깨던 앞으로 나온 인원은 정해져 있다. 그들은 모두 사회에서 태권도를 익힌 유단자들이다.
그런데 난 머리로 깨야 한다. 앞으로 나가서도 당연히 난 손으로 벽돌을 격파하면 안된다.
"아..띠발..어찌 이런일이"
그날 저녁 잠도 오지 않는다. 내가 무슨 재주로 머리로 벽돌을 깨나.
그리고 몇일 후 더 더러운 일이 생긴다.
203에서 병사 자출을 왔단다. 훈련 중 모두 집합하여 차출에 임한다.
"자네. 앞으로 나가"
"자네. 아픈데 있나."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며 하나하나 호명을 받고 앞에 도열 한다.
드디어 내차례 역시나 호명되어 앞으로 나간다.
약 80명을 뽑아 놓고 나머진 앉아 놀란다.
80여명의 우리 동기들...여기저기 불평섞인 소리가 가득하다.
자출 나온 장교 하나가 80여명의 동기 앞에 섰다.
"여기 있는 병사 중에 사회에서 아펐던 사람은 앞으로 나와라."
우르르...너도 나도 다 아팠단다.
장교 왈
"다시 들아가라."
예상치 못한 동기들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장교 아저씨.
"이 중에 서류 심사를 거쳐 선발하겠다."
돌아가는 차출요원들에게 내무반장 왈
"저 놈은 완전 특공대에 제격입니다. 꼭 뽑으십시요."
그 손가락의 방향을 보니 아니 이런 바로 나였다.
더러운 놈...끝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37사단 훈련병 식당이 203특공여단 3대대 바로 앞에 있다.
오늘도 밥먹으로 줄을 맞춰 간다. 특공대는 늘 텅텅 비어 있다.
훈련 받는 도중 60트럭에 실린 병사들이 엄청난 소리로 군가를 부르며
사라졌다 나타났다 한다...그네들이 특공대란다.
어제까지 별 이상한 기합소리를 내던 몇몇의 병사 중에 한명이 팔을 기부스하고
또 소리를 지르고 있다.(특공대에 가서야 그게 기합짜기인 줄 알았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그 키크고 싱겁게 생긴 병사가 팔에 기부스를 하고
왁왁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훈련병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밥을 먹고 4명씩 도열하여 막사로 가던 중
특공대 병사 중 하나가 우릴 부른다.
"야 너희들 신발 벗어"
그때까지 우린 사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야. 너희들 이제 곧 활동화를 지급받으니 그 사제 신발 벗어 놓고 이거 신고가라."
그리고 내놓은 신발은 다 찢어진 활동화.
아 정말 성질난다. 무슨 특공대가 이러냐. 훈병 신발 빼앗아 위풍당당 막사로 향하던
그 특공병에게 소리를 지른다.
"이 XX야 잘먹고 잘살아라."
그리고 찢어진 신발 손에 들고 도망간다.
우여곡절 끝에 퇴소식 하루 전,
내일 머리로 벽돌을 격파하려니 걱정이 앞선다.
드디어 퇴소식!
이런 저런 시범 및 갈고 닦은 훌련 모습을 보여주고 이제 격파 시간...
360여명이 차례로 격파 시작
수천명의 가족들이 여기 저기서 환호를 한다.
"벽돌 격파하 지 못한 훈병 앞으로"
각본대로 12명의 훈병만이 사열대 바로 앞에 선다.
한명 한명 벽돌을 격파하고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11명이 벽돌을 여지없이 깬다. 물론 또 나만 못깼다.
"충성...훈병 최 봉철.. 끝까지 깨겠습니다."
큰소리 한번 지르고 머리로 격파...퍽 소리와 함께 벽돌은 두동강이 난다.
수천명의 함성이 들린다. 난 잠시 동안 영웅이 되었다.
지금 밝히는 사실이지만 난 퇴소식 전날
훈련소 인사계에게 전투화가 갈라졌다고 하고 본드를 지급받았다.
벽돌을 두동강내고 열심히 본드를 발라놓고 벽돌을 갈아 깨진 부분을
완벽히 위장을 했다.
벽돌 격파 도중 갈라질까봐 노심초사 하였지만 군에서의 첫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퇴소식을 마치고
드디어 자대 명단 발표를 한다.
먼저 교도관, 전투경찰을 불렀다. 모두들 희희락락이다.
이어 육군을 부른다. 아 그리고 특공대를 불렀다. 난 안 뽑혔다.
대략 18명 정도되는 병력만이 호명이 안됐다.
특공대가 끝났으니 이제 뭐가 두렵겠나.
또다시 12명정도의 훈병의 이름이 불려진다. 그리곤
"너희는 특공대다."
이 무슨소리
"아까 특공대는 불렀습니다. 저희는 아닙니다."
챠트를 들여다보며 한마디 한다.
"아까 부른 놈들은 201, 너희들은 203, 아직 안부른 놈들은 205특공대다."
그날 오후,
증평역으로 걸어 간다. 다리에 힘이 없다.
10월에 들어서는 날씨 탓에 조금은 쌀쌀하다.
모두들 증평역에 도착하여 4열로 앉는다.
"특공대는 일어나서 이리로 와라."
우린 TMO인가 하는 사무실로 들어가 TV시청하고 있으란다.
그나마 특공대 차출을 당해 받은 최초의 혜택이다.
아주 늦은 밤 우린 조치원 역에 내린다.
그날따라 밤안개가 을씨년스럽다.
역 앞에 대기한 버스를 타고 203특공여단으로 들어선다.
정말 기분 더럽다. 그리고 두렵다.
이렇게 특공병으로서의 그 첫 발을 디딘다.
가끔씩이마나 옛 군생활을 회상하며 그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올려볼까 한다.
1986년 8월
37사단 훈련소에 머리 빡빡밀고 들어섰다.
배웅 온 친구들과의의 작별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훈련소로 들어섰다.
1중대 1소대
내가 배속받은 훈련소 소속이다.
훈련소 입소 후
이런 저런 교육을 받던 어느 날,
교육 교관이었던 내무반장이 교육 도중 나를 지명한다.
"너 이리 나와"
이유도 모른체 내무반장 앞에서고 이어
"나 따라와"
교육장 뒤로 돌아 간 내무반장 왈
"너 지금 게기냐?"
이건 무슨 귀신 씨나라 까먹는 소리.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도통 알수가 없다. 열심히 훈련 받았는데 왠 날벼락.
훈련태도가 불량했었던 것이 지...
내 인상이 불량했었던 것인 지...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게겼단다.
훈련소 퇴소식을 얼마 남기 지 않았을 즈음
내부반장이 저녁 점호에서 나를 지명하며 한마디 한다.
"최봉철"
"네. 훈병 최봉철"
"자네가 퇴소식때 머리 격파의 영광을 받았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퇴소식에 태권도 시범 및 격파를 한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차례대로 격파를 하고 격파를 하지 못한 훈병들만
벽돌을 들고 앞으로 나가 재 격파를 한다. 물론 각본에 짜여진 쇼이다.
누가 깨던 못깨던 앞으로 나온 인원은 정해져 있다. 그들은 모두 사회에서 태권도를 익힌 유단자들이다.
그런데 난 머리로 깨야 한다. 앞으로 나가서도 당연히 난 손으로 벽돌을 격파하면 안된다.
"아..띠발..어찌 이런일이"
그날 저녁 잠도 오지 않는다. 내가 무슨 재주로 머리로 벽돌을 깨나.
그리고 몇일 후 더 더러운 일이 생긴다.
203에서 병사 자출을 왔단다. 훈련 중 모두 집합하여 차출에 임한다.
"자네. 앞으로 나가"
"자네. 아픈데 있나."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며 하나하나 호명을 받고 앞에 도열 한다.
드디어 내차례 역시나 호명되어 앞으로 나간다.
약 80명을 뽑아 놓고 나머진 앉아 놀란다.
80여명의 우리 동기들...여기저기 불평섞인 소리가 가득하다.
자출 나온 장교 하나가 80여명의 동기 앞에 섰다.
"여기 있는 병사 중에 사회에서 아펐던 사람은 앞으로 나와라."
우르르...너도 나도 다 아팠단다.
장교 왈
"다시 들아가라."
예상치 못한 동기들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장교 아저씨.
"이 중에 서류 심사를 거쳐 선발하겠다."
돌아가는 차출요원들에게 내무반장 왈
"저 놈은 완전 특공대에 제격입니다. 꼭 뽑으십시요."
그 손가락의 방향을 보니 아니 이런 바로 나였다.
더러운 놈...끝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37사단 훈련병 식당이 203특공여단 3대대 바로 앞에 있다.
오늘도 밥먹으로 줄을 맞춰 간다. 특공대는 늘 텅텅 비어 있다.
훈련 받는 도중 60트럭에 실린 병사들이 엄청난 소리로 군가를 부르며
사라졌다 나타났다 한다...그네들이 특공대란다.
어제까지 별 이상한 기합소리를 내던 몇몇의 병사 중에 한명이 팔을 기부스하고
또 소리를 지르고 있다.(특공대에 가서야 그게 기합짜기인 줄 알았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그 키크고 싱겁게 생긴 병사가 팔에 기부스를 하고
왁왁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훈련병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밥을 먹고 4명씩 도열하여 막사로 가던 중
특공대 병사 중 하나가 우릴 부른다.
"야 너희들 신발 벗어"
그때까지 우린 사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야. 너희들 이제 곧 활동화를 지급받으니 그 사제 신발 벗어 놓고 이거 신고가라."
그리고 내놓은 신발은 다 찢어진 활동화.
아 정말 성질난다. 무슨 특공대가 이러냐. 훈병 신발 빼앗아 위풍당당 막사로 향하던
그 특공병에게 소리를 지른다.
"이 XX야 잘먹고 잘살아라."
그리고 찢어진 신발 손에 들고 도망간다.
우여곡절 끝에 퇴소식 하루 전,
내일 머리로 벽돌을 격파하려니 걱정이 앞선다.
드디어 퇴소식!
이런 저런 시범 및 갈고 닦은 훌련 모습을 보여주고 이제 격파 시간...
360여명이 차례로 격파 시작
수천명의 가족들이 여기 저기서 환호를 한다.
"벽돌 격파하 지 못한 훈병 앞으로"
각본대로 12명의 훈병만이 사열대 바로 앞에 선다.
한명 한명 벽돌을 격파하고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11명이 벽돌을 여지없이 깬다. 물론 또 나만 못깼다.
"충성...훈병 최 봉철.. 끝까지 깨겠습니다."
큰소리 한번 지르고 머리로 격파...퍽 소리와 함께 벽돌은 두동강이 난다.
수천명의 함성이 들린다. 난 잠시 동안 영웅이 되었다.
지금 밝히는 사실이지만 난 퇴소식 전날
훈련소 인사계에게 전투화가 갈라졌다고 하고 본드를 지급받았다.
벽돌을 두동강내고 열심히 본드를 발라놓고 벽돌을 갈아 깨진 부분을
완벽히 위장을 했다.
벽돌 격파 도중 갈라질까봐 노심초사 하였지만 군에서의 첫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퇴소식을 마치고
드디어 자대 명단 발표를 한다.
먼저 교도관, 전투경찰을 불렀다. 모두들 희희락락이다.
이어 육군을 부른다. 아 그리고 특공대를 불렀다. 난 안 뽑혔다.
대략 18명 정도되는 병력만이 호명이 안됐다.
특공대가 끝났으니 이제 뭐가 두렵겠나.
또다시 12명정도의 훈병의 이름이 불려진다. 그리곤
"너희는 특공대다."
이 무슨소리
"아까 특공대는 불렀습니다. 저희는 아닙니다."
챠트를 들여다보며 한마디 한다.
"아까 부른 놈들은 201, 너희들은 203, 아직 안부른 놈들은 205특공대다."
그날 오후,
증평역으로 걸어 간다. 다리에 힘이 없다.
10월에 들어서는 날씨 탓에 조금은 쌀쌀하다.
모두들 증평역에 도착하여 4열로 앉는다.
"특공대는 일어나서 이리로 와라."
우린 TMO인가 하는 사무실로 들어가 TV시청하고 있으란다.
그나마 특공대 차출을 당해 받은 최초의 혜택이다.
아주 늦은 밤 우린 조치원 역에 내린다.
그날따라 밤안개가 을씨년스럽다.
역 앞에 대기한 버스를 타고 203특공여단으로 들어선다.
정말 기분 더럽다. 그리고 두렵다.
이렇게 특공병으로서의 그 첫 발을 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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