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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외인부대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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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부대 하면 완전 망나니에 살인을 일삼는 프랑스 발 살인집단으로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인간의 상식을 넘어서 10초만 주면 어디서 아무나 죽일 수 있는 인간들로 구성된 부대다. 프랑스의 비공식 작전에 주로 투입이 되고 그 외에도 의뢰받는 일은 다한다...

프랑스 공식 작전 전 중 후에 비공식 작전이 필요한 경우 즉 사전에 들어가서 청소할 일이 있는 경우에 주로 쓴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싹쓸어버리는게 특기다.

거기엔 남녀노소 민간인 군인 그런거 안가린다...싸그리 정리까지 깔끔 하다고 해야하나....!

현재 그 부대에 속했다면 엄청나게 위험한 작전에 투입이 되어서 죽던지 말던지 아무도 신경도 안쓰는 존재가 된다...돈 몇푼 좀 더벌려다 .시체도 못찾는거고...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프랑스에서도 정예부대로 꼽히며 굵은 작전에는 항상 투입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19세기 초의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프랑스군은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온라인 등에서 프랑스군을 비하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착시효과가 존재한다.

프랑스에게 계속하여 어려움을 안겨준 상대가 바로 독일이었다는 점이다. 국경이 육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지역 특성 상, 두 나라가 싸움을 벌이면 육군이 앞장설 수밖에 없는데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 육군은 그야말로 세계 최강이었다. 프랑스가 약한 것이 아니라 독일이 너무 강했던 것이다.

1870년에 발발한 보불전쟁에서는 전술적으로 팽팽히 맞섰지만 전략적인 판단착오로 패하였고,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대전에서는 최종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렇다고 이긴 전쟁이라 자부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패전의 정점은 제2차 대전 당시 불과 개전 7주 만에 무참하게 패하고 항복을 선언한 1940년의 독불전쟁이었다.

여하간 고대, 중세를 거치며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던 용병이 현대적 의미로 자리를 잡은 것은 '프랑스 외인부대(레종 에트랑제)'를 원류로 보고 있다.

 이를 기인하여 1831년 창설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프랑스 외인부대는 당시 유럽 각국에서 프랑스로 흘러 든 망명객, 도피자, 부랑자, 은퇴한 군인들을 모아 만들어졌다.  장교들은 대부분 프랑스 정규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들로 꾸려진다.

한편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알제리로 파견된 레종 에트랑제는 1837년 콩스탕틴 전투, 1863년 카메론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한번 바라보자'는 모병 포스터의 문구에 사로잡힌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레종 에트랑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용감한 용병들에 얽힌 일화는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콩스탕틴전투에서 외인부대의 대령 밀셸 콤은 가슴에 두 군데나 치명상을 입었지만 승리의 낭보를 전하기 위해 여단 본부에 들어섰다. 그는 여단장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보고를 받던 여단장이 대령의 말을 막고 물었다.

"그런데 대령, 귀관은 부상을 입었군, 안 그런가?" 대령은 부동자세로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는 전사했습니다." 다음날, 대령은 심한 상처 때문에 전사하고 말았다.

당쥬 대위도 빼놓을 수 없다. 카메론 전투를 이끌었던 당쥬대위는 외인부대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다. 카메론 전투는 60여명의 외인부대원들이 2천여명의 멕시코군들과 맞서 모든 외인부대원들이 전사할 때까지 굴복하지 않았던 외인부대의 정신이 그대로 담긴 전투였다.

하루종일 굶고, 물한방울 못마시고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살아남은 6명은 마지막 한발씩 남은 실탄을 소총에 장전하고 멕시코군들에게 발사했다. 그리고 일제히 착검후 엄청난 수의 적군대를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적군의 대열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들은 총탄에 맞아 쓰러져갔다.

카메론 전투가 끝난 후 1892년 전투의 현장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의 기념비가 새워졌다.

'여기에 60여명도 채 안되는 사나이들이 적의 군대 전부에게 대항하여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의 힘은 적들을 압도하였다. 용기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목숨을 버렸던, 이들은 프랑스 병사들이었다.'

카메론 전투에서 전사한 당쥬 대위의 의수는 수거되어 외인부대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매년 4월 30일 열리는 '카메론 데이'는 외인부대의 행사중 가장 중요한 날이다. 현역뿐 아니라 퇴역한 외인부대원들도 행사에 참가하며 이날 당쥬 대위의 의수가 정중히 받들어져 부대 사열을 받게된다.

지금도 옜 전통데로 급여는 '캐피블랑'이라는 흰색 모자로 현찰을 받으며 최근 민주화된 동구권 지원자들의 지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프랑스 영주권을 보장하는 만큼 높은 경쟁율을 보이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인원이 지원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한국인은 모국에서 대다수 군필자들로 지원이 이루어지는 만큼 주로 전투병과에 배속되며 높은 전투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 외 동양인으로서 중국인은 조리사, 일본인은 대다수 행정병과로 배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지 5년 세월을 보내게 되면 프랑스 영주권이 주어지는 만큼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들의 모토는 어쨌거나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이다. 태생은 북아프리카 '모로코'이며 제 1외인 공수연대를 비롯해 몇개의 연대로 구성돼 있다.

최근 소식통에 의하면 제 1외인공수연대 일부 병력이 한반도에도 주둔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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