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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훈련의 대명사 미 레인저 부대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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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레인저연대(영어: 75th Ranger Regiment)는 미국 육군의 최정예 경보병 특수부대로, 조지아 주 포트 베닝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미국 육군 특수 작전 사령부(USASOC)의 지휘 아래에 작전한다. 경보병부대와 특수부대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미국만의 독특한 부대이다.

'레인저(Ranger)'라는 이름을 쓰는 부대들은 미국 독립 이전인 인디언과의 전투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군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정예부대들로서, 1751년에 만들어진 '로저스의 레인저 부대'(Rogers' Rangers)가 레인저라는 명칭이 붙여진 최초의 부대이다. 그 후로 '레인저'란 명칭은 정예부대의 상징처럼 되어서 각 전쟁 때마다 육군에서 제일 강인한 정예부대들에게 '레인저'라는 이름을 붙이는게 미 육군의 명예로운 전통 관행처럼 되었다.

현대의 레인저 부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42년에 편성된 제1 레인저 대대가 시초로서 창설인원은 육군 제34보병사단에서 선발되었다. 이후 레인저 대대들이 추가로 창설되었다. 유럽 전선, 북아프리카 전선, 태평양 전선 등 모든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도 대활약하였다.

종전 후 레인저 부대는 해체되었으나 한국 전쟁 때 재창설됐고, 각 육군 사단마다 중대 단위로 배속된 형식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나자 다시 해체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한 후 레인저 부대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어 1969년에 레인저 부대가 다시 재창설된다. 각 보병사단의 장거리 정찰수색대(Long-range reconnaissance patrol: LRRP)들을 통합 및 재편성하여 75 보병 연대(75th Infantry Regiment)를 창설했고 예하에 15개 레인저 중대를 두어 이 레인저 중대들이 단독으로 혹은 각 보병사단에 배속되어 활약하게 된 것이다.

미군이 월남전에서 철수할 무렵 대부분의 레인저 중대들은 해체되었으나, 상비 레인저 부대의 필요성이 주장되어 1974년에 2개의 레인저 대대를 다시 창설했다. 이후 1984년에 레인저 대대를 추가로 만들고 이들 레인저 대대들을 통합한 새로운 연대급 부대를 창설했다. 1986년에 지금과 같은 "75 레인저 연대"(75th Ranger Regiment)라는 부대명으로 결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미국이 자랑하는 레인저 스쿨은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특수훈련’으로 불린다. 소부대 전술 습득을 위한 61일간, 3단계 과정으로 구성됐다. 훈련소가 위치한 조지아주(州) 포트 베닝의 이름을 딴 1단계 ‘베닝 단계’는 독도(讀圖)법, 정찰 등의 기술 습득은 물론, 체력 통과 기준이 까다롭다. 팔굽혀펴기 49회(2분 이내), ‘쪼그려앉았다 서기’ 59회(2분 이내), 몸을 축 늘어뜨린 상태에서 팔로만 하는 턱걸이 6회 등이 기본이다. 5마일(약 8㎞)을 40분 이내 주파하고, 완전 군장(45㎏)한 채 12마일(약 20㎞)을 3시간 내에 통과하는 과정도 있다.

1단계를 이겨내면 21일간 산악훈련(2단계)과 플로리다주에서 17일간 늪 등에서 뱀·악어·독충을 이겨내는 3단계 생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하루 평균 3.5시간밖에 못 자고, 식사도 2끼 정도밖에 먹지 못한다. 교육 과정에 한 번에 300명 정도가 들어오지만 평균 45%만 통과한다. 과정에서 탈락하면 세 번까지 재교육이 가능하다.

영화'블랙호크다운'에서 델타 부대를 보호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부대가 바로 레인저이다. 특수전에서 그들의 몫이 짐작되는 부분이다.또한 영화'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톰 행크스는 특공부대 대위로 열연하며 일병 라이언을 성공적으로 어머니에게 인도한다.〈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원작자이자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역사자문위원이기도 한 스티븐 앰브로즈의 설명에 따르면 이 영화와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2차대전 중에 있었다고 한다. 뉴욕 출신으로 2차대전에 참여한 닐란드가의 4형제 중 3명이 노르망디와 미얀마 전선에서 사망하자 미군은 종군 목사 프란시스 샘슨을 파견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 프리츠 닐란드를 데리고 본국 귀환할 것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 초반 이를 본 받아 특공여단 및 연대를 창설헤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특히 특공여단은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 현지로 파견되어 굵직한 임무를 수행했으며 그 훈련 강도도 레인저에 버금가고 있으며 사병 위주의 편제를 벗어나 간부 위주의 강군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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